'2012 <방송기자> 여름호/우리가 존경하는 선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7.24 기자의 본령은 현장! by 방송기자연합회 방송기자연합회
  2. 2012.07.24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기자의 삶 by 방송기자연합회 방송기자연합회

 

 

 

 

 

기자의 본령은 현장!

SBS 박수택 기자

 

_ 송민선, 문승진 명예기자

 

전화벨이 울린다. 마을 주변 하천에서 환경오염을 목격한 어느 읍면 통장의 제보전화다. 박수택 기자는 현장조사를 위해 통장과 만나기로 했다. 올해로 기자경력 28년차를 맞이한 그는, 현재 논설위원이지만 여전히 분주하게 현장을 누비는 기자였다.

 

박수택 기자는 존경하는 선배로 선정된 것에 대해 쑥스러워했다.

지금 현장을 떠나있는 상태인데도 후배들이 그렇게 생각해주는 게 고마우면서도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에게는 작은 소망이 있다. 바로 정년퇴임하는 날까지 취재를 하고 뉴스를 하고 싶은 것. 그는 후배기자들이, 그 꿈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자신의 모습을 높게 봐준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민주주의를 꿈꾸던 시절

 

대학시절, 그는 혁신적인 학생이었다. 1980년대 당시에 정보독점을 지양하고 정보의 공개와 공유를 주장했다. 어떤 정보든지 그 정보를 독점하려하지 말고 공유하고 퍼뜨려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알게 하는 게 더 큰 힘으로 되돌아온다는 것, ‘정보 민주주의.

“‘정보를 공개해서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하라!’, 이게 내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그게 언론의 역할이잖아요. 어떤 정보든지 대중에게 필요한 정보라면, 그것을 공개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정보를 알고 그걸 바탕으로 각자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 나아가서는 건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

또한 그는 대학시절, 교통체증이 심한 공간에서 몇몇 부유한 사람은 개인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반면에 많은 서민들은 콩나물시루 버스를 타며 고생을 하는 모습을 보며 교통 민주주의를 생각했다고 한다. 많은 서민들이 이용하는 버스, 지하철 등이 제 시간에 오고 좀 더 편리하고 쾌적하면 그게 바로 교통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과 관련되는 것들(먹는 것, 입는 것, 타는 것, 쓰는 것 등)이 모든 사람한테 편하고 깨끗하고 저렴하게 되어있으면 그게 민주주의죠.”

그리고 그는, 이렇게 대중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찾아서 그것을 전파해주고 나아가 여론을 형성해주는 것 또한 언론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대학시절부터 민주주의의 여러 개념을 발상해내고 거기에서 언론의 역할을 찾아봤다는 그의 말에서 치열한 직업의식이 느껴졌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가 기자를 지망했던 것은 아니었다. 물론 어릴 적부터 언론인이라는 꿈을 품고 있긴 했으나,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자신이 없어서 다른 진로를 생각했었다고. 당시 대학에서 경영학도였던 그는 처음에는 전공을 살려 취업을 하려 했으나, 학벌의 한계 앞에서 매번 좌절을 맛보았다. 이런 그를 유일하게 받아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언론이었다.

기업에 응시를 많이 했었지만 1차 서류전형에서 다 떨어졌었어요. 그런데 당시에 언론계만큼은 이상하게도 서류전형이 없었어요. 고맙게도 학벌이라는 진입장벽이 없었죠.”

때 아닌 취업난 속, 여러 우여곡절 끝에 그는 1984MBC에 입사해 본격적으로 방송기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기자의 봉사 대상은 국민

 

그는 올곧은 성격과 확실한 실천으로 대쪽같은 기자라는 평을 듣곤 한다. 그는 그런 평에 대해 기자로서의 직분을 다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기자는 국민, 대중을 위해 존재하는 거잖아요. 국민의 대다수인 서민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힘이 부족하죠. 우리는 이런 분들을 위해 봉사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는 대중매체니까. 힘센 권력이 떳떳치 못한 일을 했을 때 그들은 이런 부분이 널리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아요. 이럴 때 언론이 그 부분을 취재하면 당연히 충돌이 생기겠죠. 그러면 기자는 대중을 위해서, 거기에 맞서야죠. 그러다보면 저 사람은 (목이) 뻣뻣하다는 소리가 나오는 거예요. 하지만 저는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그 소리를 들을 거예요.”

물론 타협도 필요하지만, 대중이 알아야 할 정도를 양보하면서까지 물러나는 건 용납이 안 된다고. 그가 강조하는 기자생활의 원칙은 무엇일까? 그는 모름지기 기자는 현장에 남아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기자의 본령은 현장이에요. 우리가 중력의 법칙으로 발을 땅에 딛고 사는 것처럼, 기자도 현장이라는 땅을 딛고 행동해야 해요. 발을 딛지 않고 책상머리에 앉아 떠있으면, 그건 유령입니다.”

그에게는 꼭 지키고 싶은 약속이 하나 있다. 28년 전에 함께 입사했던 동기들과 한 약속이다.

“198412월에 수습기자로 입사했을 무렵에 동기들끼리 , 우리 늙어서까지도 현장에서 뛰고 다짐했었어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데, 그 약속을 끝까지 지키고 싶습니다.”

그는 좋은 취재를 하려면 직접 현장 속으로 뛰어 들어가라고 조언했다. 언론은 학술(순수학문)이 아닌 현장에 바탕을 둔 활동이기 때문이다.

군사정권시절의 언론은 상당히 무력했어요. 취재보도가 아닌 정보보고 형식의 뉴스만 존재했으니까요. 그러다가 87년 민주항쟁이 일어나면서부터 언론도 공정보도를 선언한 거잖아요. 따지고 보면 언론이 당시 민주화운동에 무임승차한 거거든요. 그때 무임승차한 그 부채의식을 기억해야 한다고 봐요. 그 부채의식을 확인하는 방법, 현장으로 돌아가라!”

이처럼 박수택 기자는 현장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현장에서 취재보도를 하는 것이 기자의 존재 의미이고, 숙명이라 단언할 정도로 그의 신념은 확고하다.

 

 

 

환경전문기자가 되기까지

 

박수택 기자는 환경전문기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주로 사회부, 국제부, 편집부, 이 세 가지 부서에 몸담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사회개선, 사회발전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그가 환경전문기자활동을 하기로 한 것도 이 부서들, 특히 사회부에 있으며 얻은 경험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환경이란 말은 다분히 인간중심적인 말이에요. 환은 고리라는 뜻인데, 이 고리의 중심은 인간이죠. 그래서 환경과 인간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예요. 인간이 행복하게 살려면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환경을 중요시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거죠. 이런 개념을 사회부생활을 하면서 알게 됐어요.”

2003년 그는 SBS에서 부장승진을 했다. 그때 그는 회사에 제안을 하나 했다. ‘데스크에 관리직에 있을 사람은 많지만 현장에서 뛸 사람은 적으니 나는 현장으로 돌아가겠다. 회사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에게 가고 싶은 부서를 물어봤을 때 그는 환경을 택했다.

 

물론 처음부터 그가 환경에 대해 상세하게 알 리가 없었다.

그때는 전문기자가 아니라 사실 전담기자였죠. 제대로 아는 게 많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곧바로 환경에 대한 전문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바로 방송통신대학교에 환경보건학과로 편입을 한 것. 그가 하는 취재보도 활동을 좀 더 체계적이고 심도 있게 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었다.

박수택 기자는 중어중문학과 관광학도 공부한다. 얼핏 보면 중어중문학과 관광학은 그와는 별 관련성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환경보건학 말고도 그가 다른 학문을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지적호기심, 둘째는 계속 공부하는 것의 필요성, 셋째는 각 분야 간의 시너지효과 때문이에요.”

그는 다른 문화권, 학문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편이어서 배우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중화문화권을 이해하기 위해 중어중문학을 공부했다. 한편, 지식은 계속 분화하고 사회는 변하기 때문에 인간은 평생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하나씩 배우는 과정 속에 여러 분야의 지식, 정보가 합쳐져 큰 시너지효과를 발휘하는 것에서 짜릿함을 느낀다. 그래서 그는 전 분야에 걸쳐있는 산업인 관광에 대해 공부하고 그 속에서 환경과 관광의 시너지인 지속가능한 관광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처럼 그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자기계발하며 자신의 가치를 키우고 있었다.

 

 

미래의 삶

 

그가 은퇴하기까지 4년이 채 남지 않았다. 은퇴 후 그는 무엇을 하며 지내고 싶을까.

은퇴 후에도 지금까지 살던 대로 계속 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자기가 관심을 갖고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게 진짜 행복한 거잖아요. 저는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제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살 것 같아요.”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경력을 사회를 위해 활용할 수도 있으면서 교육적인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환경운동단체의 환경운동가나 환경 분야 프리랜서 리포터가 될 수도 있겠네요. 인생 2막을 잘 맞이하려면 지금 진행 중인 인생1막을 충실히 보내야겠죠. 밀도 있게 살고 싶네요. 기대하시죠!”

인터뷰 내내 그의 올곧은 신념이 돋보였다. 우리 사회와 미래의 후손까지도 생각하는, 환경에 대한 사랑은 빛났다. 그의 꼿꼿함과 지조 있고 일관성 있는 태도. 일과 현장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이 지금까지도 그가 많은 후배기자들에게 존경받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28년 전 했던 입사동기들과의 약속을 꼭 지키고 싶다는 박수택 기자. 그의 꿈이 이뤄지길 소망한다.

Posted by 방송기자연합회 방송기자연합회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기자의 삶

 

최기홍 선배(KBS 기자)

 

_ 신효선 , 최영지 명예기자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것들은 누군가의 수고로 만들어졌다. 그는 방송 뉴스의 디지털 제작 시스템 최전선에서 변화를 만들어냈다. 방송기술의 변천에 한 획을 그으며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BS뉴스가 파일 기반의 HD제작을 가장 먼저 시작하자 일본 NHK가 매년 찾아봐 제작방법을 배워갔다. 이처럼 국내최초 HD뉴스 전환 추진, 파일기반 뉴스제작 시스템 구축, 컴퓨터를 이용해 뉴스를 편집하는 NLE(Non Linear Editing)교육 등은 물론 지금 기자들이 지금은 취재 시 당연하게 이용하는 필드레코더를 이용해 녹음된 파일을 편집해 올리는 것, 카메라기자 배정을 커다란 칠판 대신 문자서비스를 이용하게 한 것, 외부에서 촬영된 영상을 장소 제약 없이 즉석에서 확인할 수 있게 한 프리뷰(preview)서버 구축 등은 모두 최기홍 선배의 손길이 닿은 일들 이었다. 그는 올해 3, KBS에서 30년 기자생활을 마무리했다.

 

 

신속하고 정확한 뉴스를 위해,

기술은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제작 툴을 익히기 위해 시간을 소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제작 툴을 소프트웨어라고 말하지만 진정한 소프트웨어는 사람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죠. 누구나 자신의 창의력으로 손쉽게 좋은 콘텐츠를 제작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작 툴을 사용하는 것이 어려워 사용자가 기술에 끌려 다니는 시스템을 구축해서는 안돼요.”

2.0시대에는 세상의 모든 분야가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뉴스시스템은 복잡했으며 전문 엔지니어만 다룰 수 있었다. 최기홍 선배는 누구나 쉽고 편하게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실천에 옮겨왔다. 그 기반에는 끊임없는 공부가 있었다.

최근 10~20년간은 관련된 공부를 하는 책이 하루하루 새롭게 쏟아질 정도로 변화가 빨랐는데 새로운 기술을 공부하고 알려주는 것은 좋아서 하는 일이었어요. 힘든 점이 있었다면 반대하는쪽을 설득하는 것이었어요. 기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디지털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해당 분야에 대해서 공부하며 좋은 기술이 존재한다면 가져와서 써야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기자라고 나는 기사만 쓰면 되니까. 또는 촬영 편집만 하면 되니까 라는 생각으로 시스템을 만들어 주기만 기다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사용자들이 주도적으로 관여하지 않으면 제작 워크플로우를 개선 할 수 없으니까요. 적극적인 참여로 자신에 맞는 경쟁력 있는 제작 시스템을 만들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설득하려고 했죠.”

그는 뉴스시스템의 사용자인 제작자들이 만들기 편한 시스템을 이용해야 하는 것을 강조하며 궁극적으로 그 이유는 시청자들에게 빠르고 정확한 뉴스를 전달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SNS의 발달로 1인 미디어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일례로 작년 여름 태풍이 왔을 때만해도 곳곳에서 개인이 올리는 사진과 제보가 미디어보다 빠른 정보를 제공했다. 뉴스의 속보성의 가치를 지키고 경쟁력 유지를 위해서 웹기반의 방송시스템으로 언제 어디서든 빠르고 편리하게 이용한 뉴스를 제작하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40년 지기 친구, 카메라

 

최 선배는 스튜디오 카메라맨으로 방송국 ENG카메라를 처음 잡았다. 그리고 1982KBS 공채시험에 합격해 카메라기자가 됐다.

국민학교에 다니던 때 특별활동으로 사진반에 들어갈 정도로 사진기에 관심이 많았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어요.”

중고등학교 때는 관련된 책이 나오면 모두 사서 봤을 정도였다. 요즘은 카메라를 주머니 속에 휴대하고 다니지만 당시는 카메라라는 기기조차 흔하던 시절이 아니었다. 사진이나 카메라에 대한 책은 더욱 흔치않았다.

국내서적은 많이 나오지 않아서 일본에서 나온 책까지 볼 정도로 사진에 관심이 많았어요. 일본어로 써 있어서 해석이 안 되는 부분은 아버지 옆에 앉아 해석을 부탁하기도 했고요.”

어떻게 기자가 됐는지 물었다. “독자적으로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해 뉴스를 전달하고 책임지는 카메라기자가 하고 싶어서 공채시험에 응시했어요. 방송국은 전문가들이 모여있는 곳이니까 혼자서 공부한 것을 평가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요.”

그가 처음 기자가 되었을 당시만 해도 편집을 할 때 필름을 직접 잘라서 테이프나 아세톤으로 이어붙였다고 한다. 그래서 카메라기자들이 촬영 완성 본을 머릿속에 그리고 그 구도와 장면을 그대로 촬영을 하는 방법으로 일을 했다. 찍어 온 테이프를 뉴스에 바로 재생해도 될 정도로 촬영을 한 것이다. 자르고 이어붙이는 편집을 하면 필름의 이음새 때문에 매끄럽게 재생이 되지 않아서였다. 기술이 발전하기 전의 이러한 훈련은 늘 긴장하고 방송준비를 미리 완벽하게 하는데 도움이 됐다.

최기홍 기자의 기자생활은 방송기술이 발전해나가는 과정과 함께였다.

 

 

가치관대로 걸어온 30년 기자생활

 

최 선배는 기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 기자의 사명감과 바른 가치관을 강조했다. 말로 그러했던 것이 아니라 본보기가 되었다.

촬영기자로 시작한 첫날부터 마지막 날 까지 신입사원일 때나 간부였을 때나 단 한 번도 양심에 어긋난 선택을 하지 않았던 그래서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밑거름이 되고자 하신 선배님을 오랫동안 기억하고자 합니다.’라는, 후배들이 퇴임을 기려 제작한 패 문구는 그의 기자생활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준다.

아이템을 결정하는 것, 포커스를 맞추는 것, 카메라를 잡는 각도 등이 어떻게 보면 모두다 주관적인 일이예요. 하지만 언론인으로서 가장 사실적으로 과장하지 않고 시청자에게 전달하려는 노력에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죠. 기술이 매끄럽지 않은 것은 훈련을 시킬 수 있지만 외부의 압력이나 다른 이유에 의해 사실이 아닌 것을 만들거나 하는 것은 언론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에요.”

또한 기자로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전달해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컸고 더불어 동료들에게는 자신이 알고 있는 기술과 정보를 알려주는 즐거움이 크다. 몸담은 방송 분야에서 시스템을 끊임없이 개선하고 발전시키려 노력했다. 기자생활 중에 해왔던 이런 일들이 여전히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지식을 공유하고 기회가 될 때 직접 기술 교육도 한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계속 교육을 하고 싶어요. 어떻게 보면 지역의 교육기관처럼 소규모지만 도움이 꼭 필요한 곳도 의미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곳이 예를 들면 대학교 강의처럼 충분한 환경과 기회는 주어지지 않지만 저의 교육이 꼭 필요한 곳 일수도 있거든요.”

그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지식과 정보를 내 것으로 소유하는 것 보다 확산시키고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예전에 기자라는 이름으로 해왔던 일들에 뜻이 변함없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의 힘이 꼭 필요한 곳에 가진 것을 더 나누고 싶다고 한다. 말하기는 쉽지만 그렇게 살아가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에 여전히 그를 가슴 우러러 선배라 부른다는 후배기자들이 있는 것이다.

Posted by 방송기자연합회 방송기자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