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하며 놀기

한국경제TV 신인규 기자

 

 

 

잘 생각해보면 우리의 날들은 많은 경우 어느 중위권 팀의 골키퍼의 삶처럼 지나간다. 우리의 성적은 찬찬히 따져보면 그리 나쁘지는 않다. 문제는 패배의 원인이 내게 있는 것처럼 자책하게 만드는 게임의 규칙이다. 영광은 언제나 아크 너머에 있고, 내 뒤에는 슬픈 그물이 두 팔보다 훨씬 더 넓게 걸려있다. 기대와는 다르게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어떤 골키퍼도 데뷔 전보다 기록이 좋을 수는 없으니까. 우리는 좀처럼 페널티 박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교착상황은 계속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종종 막막하다.

그럴 때 어디선가 바람이 분다.

 

언제, 어디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래서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쉬는 날이면 서교동의 지하 연습실로 갑니다. 영국의 저 유명했던, 그리고 앞으로도 유명할 밴드의 유명한 노래의 이름을 따 온 곳에서 토요일의 세 시간 내지 네 시간을 합주를 하며 보냅니다. 영 시원찮은 선풍기 옆에서, 먼지를 잔뜩 먹어가면서. 그러다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아차 늦었구나, 하면서 홍대나 또 어느 구석에서 공연을 하며 놉니다.

 

어떻게

합주는 열에 아홉 번 시원-하게 망합니다. 남들보다 한 마디 빨리 들어가거나(만약 기사를 쓰다 엠바고를 깼더라면) 혹은 쳐야 할 부분을 놓치거나(출입처에서 물을 먹었더라면!)하지만 그럴 때면 한 번 웃고 다시 합주를 시작합니다. 미안해하는 기타의 얼굴을 보는 것도 은근히 즐겁습니다. 제가 쓰는 글이기에 제 삑사리에 대해서는 지면을 많이 할애하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는 대개 아까 틀렸던 그 부분을 다시 틀립니다.

말하자면 여기는 바보들의 힐링캠프입니다. 우리는 확실히 좀 모자라지만삶에 필요한 위로를 남에게 대출받지는 않으려 합니다. 어떻게든 내가 소리를 지르고 있다는 사실과, 어떻게든 기타 리프와 베이스 라인과 드럼의 비트를 완성한다는 사실과, 어떻든 우리가(사실은 베이스가 거의 다) 노래를 만들어 부른다는 사실과, 그리고 그게 저작권이 등록돼 국내 음원 유통시장(!)에 올라간다는 사실은 - 물론 지금껏 받은 저작권료를 1년간 모아야 멤버들끼리 모여서 밥 한 끼 먹을 수 있는 정도지만 - 작고 못나고 소심한 제게 힘을 줍니다.

 

무엇을

밥을 많이 먹다 보면 언젠가는 화장실로 가게 되는 것처럼 합주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공연을 하게 됩니다. 합주가 레퍼토리를 하나하나 쌓아가는 재미가 있다면 공연은 그것들을 쏟아내는 카타르시스를 수반합니다. 기자의 업도 다른 일에 비해 자신의 결과물에 대한 반응이 빠르게 오는 편이지만 밴드는 조금 더 즉각적이고 원초적입니다. 클럽 안에서 사람들은 정직합니다. 우리가 하는 만큼 반응이 나옵니다.

 

누가, 누구와

마르고 신경질적이며 가죽바지가 잘 어울리는 그런 락밴드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먼 저는 한국경제TV의 기자이자 한 밴드의 보컬입니다. 연주보다 마음이 훨씬 더 잘 맞는 사람들을 만나서, 보통 다들 정신을 차리게 된다는 군 제대 이후로 밴드질에 빠져 있습니다. 멤버들 저마다 결혼을 하거나 직장을 얻거나 혹은 아직 얻지 못하거나 하면서도 오래된 풍차처럼 어울렁더울렁 밴드가 돌아갑니다. 우리 목표는 아주 오래 존재하는 겁니다.

 

사족: 경제적이거나 실존적인 문제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이 밴드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소싯적에 통기타를 좀 잡아보신, 노래방 마이크라도 좀 잡아보신 형님과 누님들이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밴드는 금전적인 부담이 의외로 적습니다. 기타나 베이스, 키보드의 경우 악기나 이펙터 등을 마련하기 위해 초기 비용은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요새는 중고시장이 활성화돼 있어 저렴하면서도 좋은 녀석들을 구하기가 어렵지 않고, 또 그런 과정 역시 밴드 재미의 하나라고들 합니다. 그 이후에는 시간 당 1만 원 가량 하는 연습실 대여비와 술값 정도만 있으면 됩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밴드를 시작하지만 곧 멤버들과 불화로 마음을 잃고(오아시스의 리암과 노엘 형제처럼) 공연은 종종 엎어지며(올해의 라디오헤드처럼) 내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문제가 생겨납니다(아아, 커트 코베인). 선곡에서부터 합주, 공연 직전까지 곳곳이 암초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직장 이외의 무언가에 시간을 내서 파고드는 게 좋아 보이지만은 않는다는 것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겁니다. 천천히 같이요. 영광은 언제나 아크 너머에 있지만, 하다 보면 내년엔 또 모르죠.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방송기자연합회 방송기자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