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용(試用) 기자에게 고합니다

 

MBC 기자가 되려고 하십니까

당신이 쓰는 기사 한 줄, 오늘도 동료 언론인의 등에 꽂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돌아오고 있습니다

 

MBC 박주린 기자

 

 

 

 

MBC 기자가 되려고 합니까?” 면접관의 갑작스런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모범 답안을 외웠을 뿐,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비로소 MBC 보도국에 와서야 그 답을 알 것 같았습니다. ‘권력과 자본 앞에서 당당한 기자라는 이상이 현실과 부딪힐 때마다, MBC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든든한 버팀목이자 자긍심이었습니다.

하지만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고백했듯, 정권이 임명한 낙하산 사장아래에서 보도국은 급격히 무너져 갔습니다. 정권 비판적인 기사가 사라진 <뉴스데스크>는 심각한 편파, 왜곡 방송으로 전락했습니다. 시청자들은 MBC를 외면했고 기자들은 집회 현장에서 쫓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나마 남아있던 선후배간의 비판과 토론 문화마저 상명하달과 일방통행식 지시로 대체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이크를 내려놓았습니다. 현 정권 출범 이후 4번의 파업과 2번의 제작거부로도 모자라, 이번만큼은 반드시 MBC를 정권이 아닌 국민의 품으로 되돌려놓자며 총파업에 나섰습니다. 대다수 기자들은 물론 보직 간부와 앵커들마저 직을 던지고 벌써 다섯 달 가까이 공정방송낙하산 사장 퇴진을 외치고 있습니다.

 

 

사측은 당신의 미래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사측이 선택한 건 무분별한 대체 인력채용이었습니다. 파업 초기 임시직 기자채용이 사실상의 미달 사태로 파행을 빚자 당신과 같은 시용(試用) 기자채용안을 내 놓았습니다. ‘시용(試用)’. 말 그대로 시험 삼아 써 본다는 뜻입니다. ‘1년 근무 후 정규직 임용이라는 고용 조건은 그 동안 서비스, 유통업 등에서 사용되던 방식입니다. ‘시용 기자MBC는 물론, 한국언론 사상 유례 없는 고용 형태입니다. 사측이 왜 하필 파업 중에 그런 고용 형태를 고안해냈는지, 당신은 진지하게 생각해보셨습니까.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사측은 시용 기자의 근무 여건이나 미래, 기자로서의 소명 의식 따위엔 관심이 없습니다. 사측이 원하는 건 당장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당신들을 통해 자신들의 의도대로 뉴스를 만들고 마치 보도국이 정상화된 것처럼 눈가림하는 것, 그 뿐입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당신은 얼마나 소신 있는 기사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채용안이 발표되자마자, 저희는 매일같이 보도국에 올라가 채용을 철회해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입사 30년이 넘는 논설위원 선배들까지 시용 기자 채용은 부작용이 몇 십 년은 갈 재앙이라며 채용 철회를 요구하는 기명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밥그릇 때문이 아닙니다. 당신들을 채용한다고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요, 대우가 나빠지는 것도 아닙니다. 저희가 우려한 건 업무에 복귀한 뒤 빚어질 분란의 불씨와 구성원 사이의 갈등, 그 뿐이었습니다. 소중하게 지켜온 일터가 이렇게 망가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보도국에 남아 있는 선배들은 끝내 귀를 막았습니다. 청경들을 동원해 보도국 출입을 폐쇄했고, 급기야 <뉴스데스크>의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 면담을 요구하는 저희들을 폭도로 규정하는 거짓 뉴스를 내보냈습니다.

 

 

당신을 동료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저희는 당신을 동료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공정 보도를 외치는 기자들의 절규에 귀를 닫아버린 사측이 고용한 대체 인력과 함께 일할 수는 없습니다. 꼭두각시를 자처한 이들에게 기자로서의 동료애를 나눌 생각이 없습니다. 파업이 끝나고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간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료로서 인정받지 못한 채 사소한 대화마저 단절된 일터. 과연 행복할까요. 당신은 그 때 빚어질 비참한 상황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 보셨습니까.

제겐 개인의 선택을 강요할 자격도, 능력도 없습니다. 개인마다 다른 사정을 함부로 재단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기자는 불편부당한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는 전제에 공감한다면 당신을 뽑았던 그 채용이 기자를 선발하는 것이 아니란 점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당신이 상상하는 ‘MBC 시용 기자의 모습이 어떤 것이든, 본질은 편파, 왜곡 방송을 연장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국 당신이 선택한 길은 어디를 가게되든, 당신을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입니다.

 

 

당신의 기사는 동료 언론인에 대한 칼날입니다

 

이번 파업으로 벌써 8명의 동료가 해고됐고, 100명 넘게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70명 가까운 조합원들에게 내려진 대기발령 조치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다섯 달째 월급이 끊긴 동료들은 묵묵히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모두, 싸워야 할 때 싸우는 것이 상식을 지켜내는 힘이라고 믿는 기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허울뿐인 <뉴스데스크>를 채워가고 있는 당신에게 이 숫자들을 거론하는 건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전 세계 131개국, 60만 명 기자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 국제기자연맹(IFJ)마저 규정한 언론의 독립을 위한 싸움에서, 당신은 원하든 원치 않든, 언론 탄압을 자행하는 한 무리에 속해있다는 점입니다. 당신이 쓰는 기사 한 줄은 오늘도 동료 언론인의 등에 꽂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돌아오고 있습니다.

행여 당신은 파업과 ‘MBC 입사는 별개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간과해선 안 될 점은 진정한 공영 방송을 바라는 마음으로 채용이라는 기회를 포기했던 동료 언론인들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정당한 기회의 장을 기다리며 한 발 물러선 그들의 선택은 어리석은 것일까요. 이미 파업 초기 채용된 임시직 기자가운데 일부는 자의로, 혹은 타의로 MBC를 떠났습니다. 지금 당신이 일하고 있는 그곳은 진정 당신이 상상했던 ‘MBC 보도국의 모습입니까. 만약 그런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 ‘기자는 두려움 없이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배웠던 한 때의 동료 언론인으로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생각해보길 간곡히 부탁합니다.

 

"당신은 왜 MBC 기자가 되려고 하십니까."

Posted by 방송기자연합회 방송기자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