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선배 기자의 위기

선배 기자가 가져야 할 리더십은 무엇일까?

MBN 갈태웅 기자

 

 

 

 

군대 얘긴 다들 싫어하지만, 글의 목적상 꺼내야겠다. 소대장 때 얘기다. 2000ROTC 38기로 임관한 기자는 강원도 한 예비사단으로 배치 받았다. 군필자는 잘 알지만, 예비사단은 한 달에 1~2번은 꼭 훈련이 있어서 한여름 7월부터 군장을 싸야 했다. 포병 소위들은 대부분 보병 중대 화력지원관 역할을 하는 관측장교로 보직 받는 관행상 기자도 32연대 9중대(아직도 안 잊어먹었다. 하도 기억이 생생해서) 관측장교로 배속됐다. 그런데 그곳 중대장이 깡패수준을 넘어 사실상 조폭이었다. ROTC 4기수 위 선배였지만, 중대장실에 떡하니 붙어 있는 연대장의 경고장(아마 반항하다 받은 것 같았다)을 가리키며, 억센 부산 말투로 연대장, 죽고 싶나를 연발하는 모습은 가히 영화 친구의 유오성을 능가했다.

 

훈련 첫날부터 공포가 시작됐다. 방어진지로 가던 중 중대장이 무전병에게 소대장 전원 집결을 명령했는데, 무전이 제대로 안 됐다. 10분 만에 마지막 3소대장이 도착하는 순간 중대장은 말년 병장이었던 무전병의 머리를 주먹으로 마구 갈겼다. 더구나 맞으면서도 꿋꿋하게 관등성명을 외치는 무전병, 기자와 관측병들은 두려움을 넘어 멘붕에 빠졌다.

이후 이틀간 분침호에 매복해 있으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중대장 옆에 꼭 붙어 있어야 했던 기자는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중대장은 기자가 내민 화력계획판을 쳐다보지도 않고, “포병 나부랭이가 무슨 전투를 알겠느냐며 기자와 관측반을 조폭 수하취급했다. 밥조차 제대로 넘어가지 않을 때 “9중대는 즉각 인근 XX사단 의무대대 뒷산을 개척해 진공하라는 공격 명령이 내려왔다. 즉시 차량으로 의무대대에 진입한 뒤 전 중대 병력이 뒷산을 오르려는 찰나, 산 중턱 의무대대 본부 문이 벌컥 열렸다. 의무대대장과 작전과장이었다.

 

! XX들아! 누구 마음대로 남의 부대에 들어오는 거야?” 중대장이 연대에서 그렇게 지시 받았습니다라고 했지만, 의무대대장은 너네는 연대 지시만 있으면 남의 사단에 지 멋대로 들어가나? 당장 튀어 올라와!”라며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중대장은 즉각 가께매어 총을 하고, 의무대대 본부로 총알같이 뛰어갔다. 기자와 관측반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니, 전 중대 기분이 째질 것만 같았다.

작전과장도 나섰다. “너네는 뭘 그리 멀뚱하게 쳐다보고 있어? 빨랑 차에 타지 않고!” 우리 관측병 하나가 발걸음을 뗐지만, 놀랍게도 전 중대 병력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존심에 타격을 입은 작전과장이 흥분했다. “XX들 봐라? 빨리 차로 안 튀어가?” 그때 중대의 최고참 병장이 조곤조곤하지만 강하게 맞받아쳤다. “저희는 중대장님 명령 없인 못 움직입니다, 우리 중대장님 돌려주십시오!” 작전과장은 광분했다. “XX들이, 미쳤나? 빨리 안 타?”라며 중대원들을 밀고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원맨쇼에 그칠 뿐, 그렇게 몇 분이나 흘러갔을까. 드디어 중대장이 풀려(?)나왔다.

 

! X, 올 드럽게 재수 없네! ! 가자!” 그러자 중대원 모두 우르르 차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충격이었다. ‘휴가 잘 챙겨주고, PX 몇 번 데려가면 군대 리더십은 끝이라 생각했는데, 완전 오판이었다. 고려시대, 몽골 기병을 연상케 하는 연대 공격이 한바탕 끝나고, 부대로 돌아오면서 조폭 중대장을 다시 한 번 쳐다봤다. 막사로 복귀한 중대원들 목욕물부터 먼저 챙겼다. 아니, 훈련을 앞두고, 모든 중대가 전술평가 고득점을 위한 세트 피스에 정신이 없을 때도 그럴 시간 있으면 애들이나 공 한번 더 차라며 소대장들을 연병장으로 내몰더니, 자기가 직

접 웃통 벗고 드리블했다. ‘신삥소위이자 ROTC 후배가 짜놓은 엉터리 화력계획판을 밤에 혼자서 몰래 수정해 놓은 사실도 뒤늦게 떠올랐다. 하루를 더 9중대에서 숙영하고, 다음 날 포병 대대로 복귀하는 날 오전에도 ‘9중대 유오성은 웃퉁을 벗고 중대원들과 군대스리가를 벌이고 있었다.

 

이렇게 장황한 스토리를 들먹이는 건 요즘 선배 기자의 리더십이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군대 시절 리더십을 아무 곳에나 갖다 붙인다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솔직히 리더십하면 자신 있었다. ROTC 후보생 시절 배운 군사학 중 3분의 1리더십과목이었고, ‘조폭 중대장을 통해 건진 입만 여는 소대장이 아닌, 몸으로 함께 부대끼는 소대장이란 나름의 개똥철학은 군에서 꽤 효험을 봤다. 그런데 막상 언론 사회에선 점차 그 효능을 잃어가고 있다. 내가 체득한 살아있는 솔선수범은 지금 후배들에게는 무지막지함으로 빙의해 버렸다. ‘같이 일해보고 싶고, 배울 게 있는 선배가 아니라 그냥 무서운 선배가 돼 버리면서 앞으론 후배들의 심기부터 경호해줘야 한다는 불안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내가 후배 때는 안 이랬는데.’ 기자 역시 이 말이 제일 듣기 싫었다. ‘지금 현재, 자기나 잘 할 것이지.’ 그런데 그 눈치, ‘더럽고 아니꼽지만 그 쪽이 선배니까 꾹 참고 들어 준다는 눈치마저도 실종될 위기다. 싫은 소리 한마디 하면 대번 얼굴에 표시가 나고, ‘이런 거 한번 해 봐야 하지 않을까?’하면 뭘 안다고 나서긴 나서나?’란 표정 역력하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이건 비단 개인적인 문제에 국한되지 않았다. ‘인기 관리를 하는 선배가 늘었다는 현실이 그 반증이다. 하도 물을 많이 먹어서 출입처에 홍수가 나게 생겼는데도, “그럴 수도 있으니까. 힘내~” 후배는 당장 이 인간적으로 포장된선배를 따르기 마련이고, ‘홍수를 막아라고 아우성치는 선배는 그저 무늬만 상사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기자에겐 前述조폭 중대장이 재삼 오버-랩 된다. 자기 자식을 가장 아끼는 부모도 제대로 됐다면, 자식을 마냥 감싸고 귀여워하지만 않는다. ‘마마보이가 끼칠 해악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물며, 혈연으로 맺어진 곳도 아닌 조직 사회에서 절대적인 애정은 조직 붕괴를 낳을 수도 있다. 무전이 펑크가 나도, ‘그래, 그럴 수 있어~’, ‘화력계획판이 잘못돼도 그래, 그럴 수 있어~’ 하다간 어느새 중대 한복판이 뚫린다. 그때도 그래, 그럴 수 있어~’라던 선배가 인간적으로 보일 수 있을까. 그땐 무전병이나 관측장교는 물론 조폭 중대장까지 연대장, 사단장, 군단장에게 타격 대상이 되면서 군법회의에 가게 된다.

 

물론, 선배가 되기는 쉬워도 선배 노릇을 하기는 어렵다. 일병, 상병을 물 흐르듯 보낸 병장은 일병, 상병의 고충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병장일수록 ! 내가 일병 때는 말이야!’라고 오버하지만 일병, 상병에겐 그저 소음일 뿐이다. 선배는 무전이 펑크 났으면, 왜 펑크 났는지, ‘엉터리 화력계획판은 왜 엉터리인지 알아야 한다. 그건 선배의 간단한 소견과 깜냥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후배일 때 무전을 다뤄봤어야 하고, 화력계획판을 그려봤어야 안다. 그게 또 후배 생활을 충실히 했다는 무형의 증명서가 된다. 그 증명서는 또한 다른 조직에서 먼저 알아봐 준다. ‘축구 좀 한다고 후배 때부터 떠들어 봐야 빅 리그에 스카웃되는 건 L

수가 아니라 찬밥 대접에도 묵묵히 기본기를 다졌던 박지성이다.

 

수습기자를 제외하곤 모든 기자는 후배이자 선배이다. 당장 출입처를 이어받는 후배에게 선배는 전수해 줄 게 있어야 하고, 같은 부서의 후배에게 선배는 좋은 소스와 기사 제공처, 때로는 인생 상담사 역할까지 해줘야 한다. 이는 제대로 된 선배의 권리이자 또한 의무이다. 출입처 인수인계가 제대로 안 되면, 당장 그 후배는 내일부터 물 먹어야하고, 다른 회사 선배는 후배에게 좋은 소스를 물어다 주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할 경우 우리 회사 보도 자체의 퀄리티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배가 없어도 서울시내 전 사건 라인의 모든 걸 꿰뚫고, 모든 정부 부처의 첩보·정보를 장악하고, 국회의원 전체를 상대할 수 있다는 양질의 후배가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전투의 기본은 지피지기인데, 조금 전까지 해당 출입처를 상대하고 나온 선배보다 더 많이 안다고 하는 걸 봤을 때 언론사 입사 전 상당한 삶의 궤적을 쌓아온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절대 출입처에서 구멍이 나지 않아야 하는데, 대단한 표면적 자신감(?)과는 달리 홍수는 계속되고 있다.

 

남해에서 나는 내 방식대로 싸우겠소!’라고 선언했던 녹도만호 정운을 이순신이 그래, 그렇게 하시오!’라고 했다면, 굳이 정운과 티격태격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고, 싫은 소리 대신 부하의 전술적 식견을 100% 인정해 준 인간적인 장수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된 해전 승리와 명예까진 담보해 주진 못했을 것이다. 해전 자체를 반대하고, 해전을 벌이더라도 배와 배끼리 마주쳐 접전을 벌이는 것만이 최상이라고 여겼던 정운과 달리 세계 최초의 해상 함포 사격전을 설득하고, 이끌었던 이순신의 전술이 결국 왜군에겐 치명상이 됐기 때문이다. 물론 이순신의 전술은 그 자신이 만호 시절 겪었던 패배와 교훈에게 나온 것이었다.

 

201011, 연평도 포격 당시, 연평도를 찾은 국방부장관과 합참의장이 해병 자주포 부대에 북한군 방사포와 자주포, 우리 자주포의 유효 살상거리, 분당 지속 발사수를 비교해 물은 적이 있다. 취재하던 중 혼자서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10년 전, 조폭 중대장과 화력계획을 놓고 티격태격했던 내용으로, 장관과 합참의장이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살벌했던 조폭 중대장은 지금까지도 그렇게 기자에게 몸으로 체득하게끔 했던 경험들을 잊지 않게 해 주고 있다.

 

却說하고, 선배 기자 리더십이 위기를 맞은 지금, 기자는 어떤 타협안을 내놔야 할까. 결론은 간단하다. 후배들이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 후배들이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일만 하면 우리 조직은 또 홍수를 맞게 된다. 그렇다면, 결론은 더욱 간단하다. ‘조폭 중대장이 했던 일을 지금 이 시점에서 그대로 따라할 수는 없지만-특히, 욕설과 주먹 등-선배가 앞장서 뛰어주며 홍수 지역을 커버해 줄 수 밖에 없다. ‘막상 자신이 선배가 됐을 때, 후배를 상대로 과연 그 커버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란 의구심을 스스로 깨닫도록 해 주는 선배, 기자는 그런 선배가 되고 싶다.

 

물론 그런 선배가 되려면 홍수 지역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 그래서 기자는 오늘도 조폭 중대장처럼 웃통을 벗어던지고, 현장부터 나간다. 홍수 방지는 물론 더 많은 후배가 생겼을 때 조금이라도 더 귀띔해 줄 수 있는 지피지기를 쌓기 위해서다. ‘앉아서 인터넷이나 뒤지고 보도자료, 연합뉴스나 재구성하는 실상대신 미약하지만, 살아있는 선배기자 리더십을 조금이라도 보여주고 쌓아두기 위해, ‘자기는 한 번도 안 뛰어봤으면서란 면피 꺼리를 애초에 차단하기 위해 기자는 오늘도 기자실 자리를 박차고 살아있는 현장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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