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늑대와 나쁜 늑대

언제나 착한 늑대를 선택하는 선배가 될 수 있기를...

 

KBS 최정근 기자

 

 

 

 

어느 날 저녁, 체로키족 노인이 손자에게 내면의 갈등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얘야, 우리 안에 있는 두 마리 늑대가 싸움을 벌이고 있단다. 그중 한 마리는 못된 늑대지. 그것은 분노, 질투, 후회, 탐욕, 거만, 무시, 죄의식, 원한, 열등감, 거짓말, 불명예, 우월감이란다. 다른 한 마리는 착한 늑대란다. 기쁨, 평화, 사랑, 희망, 경건, 겸손, 친절, 공감, 너그러움, 진실, 동정, 믿음이지.”

 

북미 원주민의 지혜를 전하는 책,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에 나오는 구절이다. 삶이란, 이처럼 누구에게나 갈등의 끊임없는 되풀이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 마음 속 못된 늑대와 착한 늑대가 늘 싸움을 벌인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숱한 정보 속에서 취재 아이템을 골라 기획할 때에도, 마이크와 취재수첩을 들고 현장에서 취재를 할 때에도, 원고를 쓰고 편집을 할 때에도 그렇다. 그리고 그 갈등은 대부분 일상에서 만나 부딪치는 숱한 사람들 때문에 빚어지고 커지기 마련이다.

 

최근의 가장 큰 갈등은 파업 사태로 불거졌다. 지난 32KBS 기자협회가 제작거부를 시작했고 나흘 뒤 새노조가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기자협회원이자 노조원으로서 자연스럽게 그 대열에 동참해 일손을 놓고 광장에 나갔다. 하지만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다. 제작거부와 파업의 명분에는 십분 공감했지만 그 시점에서 막상 뉴스 제작을 중단하는 게 옳은 수단인지 의문을 품었다. 부끄럽게도 그 대오가 얼마나 굳건할지도 의심스러웠다. 혹시 참여 인원이 생각보다 많지 않으면 내 꼴이 우스워지지는 않을지를 잠깐 걱정했고, 어쭙잖게도 어느새 사내에서 중고참이 되어버린 기수 서열에 비춰 파업 참여가 합당한 것인지를 고민하기도 했다. 그 갈등의 과정에 역시 주변 사람들이 얽혔다. 파업에 동참하는 건 옳지 않다며 은밀하게 또는 노골적으로 회유하는 선배들이 여럿 있었다. 평소 믿고 따르던 선배들도 그런 말을 건넸다. 마땅히 갈등이 깊어졌다.

 

하지만, 착한 늑대가 이겼다. 당연히 파업에 참여하리라 믿고 집회 현장에서 보자며 밝은 미소를 건네는 후배들의 눈빛이 힘이 됐다. 난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고 싶었다. 마음 속 못된 늑대는 금세 꼬리를 내렸다. 파업현장에서는 착한 늑대가 더욱 힘을 얻었다. 후배들의 힘찬 팔뚝질과 구호 속에서 착한 늑대는 강해졌다. ‘, 저 선배도 나왔네?’ 싶을 정도로 연차가 한참 높은 선배들의 조용하고 따뜻한 눈길에서 착한 늑대는 더욱 용감해졌다. 파업이 길어지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 답답한 상황, 때때로 못된 늑대가 눈을 매섭게 번뜩이며 으르렁대기도 했다. 착한 늑대를 물어뜯으려 달려들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서로의 착한 늑대를 다독이고 채찍질해가며 용기를 주고, 그렇게 끝까지 대오를 함께 지켰다.

 

파업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파업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착한 늑대를 짓밟은 못된 늑대의 선배 모습을 수없이 지켜봤다. 물론 저마다 생각과 소신이 다른 게 당연하고 그걸 인정해야 한다 해도, 파업을 하는 많은 후배들의 시선에선 상식과 공정의 길을 벗어난 채 후배들의 가슴에 못질을 하는 선배들의 모습이 실망스러웠다. 분노를 일으켰고 추하다 못해 측은하기까지 했다. 나는 후배들에게 그런 선배가 되고 싶진 않다. 이번 파업과 같은 극한 상황뿐 아니라 앞으로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그처럼 못된 늑대가 착한 늑대를 물어뜯어 이기는 모습의 선배이고 싶지 않다. 함께 일하는 후배들에게 부족하나마 겸손과 진실을 보여주는 선배가 되고 싶다.

나는 또, 착한 늑대와 못된 늑대가 볼썽사납게 싸우기만 하는, 그런 좌고우면하는 모습의 선배이고 싶지 않다. 지난 회사 생활에서 판단을 내려야 할 때를 모른 채 결정을 미뤄놓고는 엉뚱하게도 후배에게 잘못의 책임을 미루는 선배의 모습을 적지 않게 보아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지도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도 않은 채 오히려 후배들 탓만 하고 있는 이웃 MBC의 저 선배를 보고 있지 않은가? 나는 부질없이 눈치보고 갈등하는 나약한 선배가 아닌, 번뇌와 주저의 찰나에도 믿음과 희망의 착한 늑대를 얼른 불러내 빠르고 정확한 결단을 하는 명쾌함을 가진 선배가 되고 싶다.

 

나는 나아가 후배들의 마음에 못된 늑대를 불러내 화를 돋우는 그런 선배는 더더욱 되고 싶지 않다. 내가 그랬듯, 지금도 그렇듯, 후배들은 선배들 탓에 늘 갈등을 하게마련--물론 그 못지않게 반대의 경우도 많지만--이다. 입사가 몇 년 앞선 선배랍시고 알게 모르게 윽박지르고 짓눌러 후배들을 갈등과 고통에 빠뜨리는 대신, 후배들을 사랑과 친절로 다독이고 발랄한 기질과 재능을 북돋우는 그런 선배가 꼭 되고 싶다.

 

새삼 다짐을 하고보니, 여러모로 부족한 내게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모습이 부끄러워 낯이 뜨겁다. 부단하고 치열한 수양이 필요할 터이다. 앞서 인용한 책의 구절은 이렇게 끝난다.

 

손자는 골똘히 생각하더니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럼 어떤 늑대가 이겨요?”

네가 먹이를 더 많이 주는 늑대가 이기지.”

Posted by 방송기자연합회 방송기자연합회